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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주 칼럼] 꿈과 허상 사이

by admin

2013년 미국 인구조사국은 향후 30년 후 미국에서 백인이 소수가 된다고 발표했다.

그해 5살 미만의 백인 유아가 전체 인구의 50퍼센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이 성인이 됐으 ㄹ대인 2043년 백인 성인은 전체 인구의 절반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미국 땅에 백인 역사가 시작된 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다.

이후 미국 역사는 1620년 종교박해를 피해 신대륙을 찾아 나선 쳥교도들의 ‘꿈’과 1851년 일확천금의 욕망을 불태웠던 골드러시의 ‘꿈’, 전 세계 패권 장악을 위한 제국의 ‘꿈’ 등으로 점철된다.

미국 역사는 ‘드림’의 역사다.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인간군의 원대한 꿈과 욕망들이 아메리카라는 땅덩어리 위에 집대성되어 미국 역사가 이뤄졌다.

아메리카 드림은 기회와 가능성이다. 지금도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열려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바라보고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같이 아메리카 드림을 향해 돌진한다.

인구 분포 변화는 백인들의 저출산과 타인종의 높은 출생률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아메리카 드림을 품은 이민자 증가가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꿈이 ‘희망’의 동의어라는 데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희망의 동의어이기도 한 꿈은 한편으로 ‘허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꿈은 ‘허상’을 명백히 드러낸다.

콜럼버스의 꿈은 원주민들의 비극을 담보로 한다. 미국은 새로운 땅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그들의 땅’이었다. 남들이 잘 살고 있는 당을 가리켜 신대륙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허상’이다.

꿈을 좇은 이들은 꿈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꿈이란 기본적으로 어둠을 필요로 하고 ‘감은 눈’이 필수적이다.

신대륙 ‘발견’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꿈의 언어는 땅과 가족과 희망을 짓밟힌 원주민들의 현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눈 감아야 성립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면 자동으로 미국 국적을 주는 ‘속지주의’를 폐지하겠다고 시사했다. 미국에 세금을 내지 않는 이들의 자녀에게 미국인 자격을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불법체류나 원정 출산의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자녀를 미국인으로 만드는 꿈을 꾸는 이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뒤집어 보면 다수가 소수가 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 일런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백인이 소수가 된다는 건 이민자들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의미고 이민자들으 꿈이 성취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어쩌면 아메리칸 드림은 초기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사투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꿈이 담긴 내 땅을 지키는 동시에, 내 땅을 뺏으려는 또 다른 꿈과 전쟁을 벌여 나가는.

이제 더 이상 꿈만 꾸어서는 안된다. 꿈을 꾸는 한 편에서 꿈에서 깨어나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된다. 내가 서 있는 발 밑의 현실에 눈 감아버리면 애써 쌓아올린 꿈이 ‘허상’ 안에 갇혀 버릴 수도 있다. 꿈과 허상은 종이 한장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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