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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주 칼럼] ‘제구실’을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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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주 _ 텍사스 한국일보 대표·편집국장


‘홍역은 평생 안 걸리면 무덤에서라도 걸린다.’
홍역은 누구나 한번은 치러야 하는 병이라는 뜻을 지닌 속담이다. ‘홍역을 치르다’라는 관용구가 있다. 몹시 애를 먹거나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에서 자주 쓰인다.

홍역은 콜레라, 천연두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전염병이었다. 치료법이 전무했던 시절, 홍역은 집단 공포의 대상이었다. 홍역에 걸린 사람을 격리하고, 마을에 불을 지르고, 심지어 산 채로 바다에 던지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는 사실에 가깝다. 그만큼 홍역의 파장과 확산력은 대단했다.

‘제구실을 한다’는 말도 여기서 생겨났다. ‘평생 안 걸리면 무덤에서라도 걸린다’는 홍역을 앓은 후 살아 남아야 비로소 ‘제구실’을 하게 된다는 이 말은 제구실의 본디 뜻인 ‘마땅히 해야 할 일이나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와도 맥이 닿아 있다.

2016년 9월 28일. 세계보건기구(WHO)와 팬아메리카보건기구(PAHO)는 미 대륙이 세계 최초로 홍역소멸지역이 됐다고 공식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미국 뿐 아니라 캐나다에서 칠레까지를 아우르는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홍역 소멸지역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미국이 홍역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문자 그대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최신 발표에 따르면 2019년 들어서만 22개주에서 695명의 홍역환자가 발생했다. 불과 4개월만에 이뤄진 수치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홍역소멸을 선언한 2000년 이후 최다기록이기도 하다.

미국만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전 세계 홍역 감염자수가 2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전년 대비 50% 이상 급증한 수치다. 공식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실감염자 수는 훨씬 많다. 세계보건기구는 최대 10배 수준까지 감안한다.

홍역은 이미 오래 전 인류가 정복한 질병이다. 단 한번의 접종으로 95%에 육박하는 예방효과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역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건 예방백신 거부현상 때문이다. 홍역이 아이들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일명 ‘백신괴담’이다.

백신 공포는 1998년 영국의 앤드루 웨이크필드라는 의사가 홍역·볼거리·풍진을 동시에 예방하는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를 의학 전문지에 게재하면서 불거졌다. 연구 결과가 거짓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백신 괴담’은 여전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면역을 가진 사람이 많아야 개인이든 사회든 홍역을 치를 확률이 적어진다. 백신 개발이 완료된 현대사회가 ‘제구실’을 하려면 사회 구성원들이 제 때 예방접종을 받아 공동체 전체의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

비단 홍역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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