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콧, 21세기 항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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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대 후반, 아일랜드는 세계사에 남을만한 대기근을 겪었다.

당시 일이다. 농지 소유주를 대신해 소작인을 관리하던 감독이 유달리 악랄한 사람이 있었다. 계속된 기근으로 목숨마저 위협받자 소작료를 내려달라는 농민들의 요구가 빗발쳤지만, 그는 오히려 말을 듣지 않는 소작농을 영지에서 쫓아내기까지 했다.

원성과 분노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우체부는 배달을 거부했고, 동네가게에서는 물건을 팔지 않았으며, 집안일을 돕는 하인은 철수했다. 그의 이름은 찰스 C. 보이콧. 거부 또는 불매운동을 뜻하는 고유명사 ‘보이콧’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보이콧의 역사는 중국이 유별나다. 중국은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적대적 상대를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펼쳐왔다.

1843년에는 난징조약에 반발해 중국 부동산 소유주들이 외국인에게 주택임대를 보이콧했고, 1905년에는 중국인 이민을 제한한 미국을 겨냥해 전 세계적인 불매운동을 벌였다.

가까운 예로는 2012년 센카쿠 열도를 자기땅이라 우기는 일본을 대상으로 3개월 가까이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2017년 주한미군 사드배치에 반발, 중국 여행사들의 한국관광상품 판매를 금지시킨 사례도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일제 불매운동은 조선물산장려운동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20년대 초, 일본의 경제수탈정책에 맞서 토산품을 애용하자는 움직임은 일본의 경제 예속화를 벗어나기 위한 거국적 애국운동으로 확산됐다.

이후에도 우리 민족은 한일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일제 불매운동을 벌였다.
2001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2005년 독도 영토분쟁을 가속화 한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 2013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일본정부 관계자 파견 등이 이슈가 되면서 한국사회에서는 일본 제품 보이콧 운동이 펼쳐졌다.

그리고 2019년 여름, ‘보이콧 재팬’이 한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문제삼아 일본정부가 경제보복을 실시하면서 불거졌다.

한국을 지배한 일본의 불법성과 만행은 청산돼야 할 역사적 과제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국가의 법적 판결을 문제삼아 경제보복을 가하는 건, 말 그대로 적반하장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여전히 100년전 식민지 조선쯤으로 여기는 일본의 역사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행패’다.

“한국에는 기생집이 있어 그것(위안부)이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은 단지 어리석은 국가다” “침략이란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진 바 없다” 등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망언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실수가 아니다.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오만불손 후안무치한 인식의 실체다.

한국을 점령한 일제의 만행이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이번 보이콧 운동의 뿌리다.

“1919년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2019년 일본 불매운동은 한다.”
보이콧 구호에 담긴 결의가 비장하게 가슴을 울리는 이유다.


최윤주·텍사스 한국일보 대표·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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