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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이민역사, 언제 시작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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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이민역사 바로 잡기 <2>

최윤주 기자 choi@koreatimestx.com

달라스 한인회 역사로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반백년의 시간을 흘러 달라스 한인사회는 인구 13만을 육박하는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지만, 한인 이민역사정립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제35대 달라스 한인회가 이민역사 기념관 설립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지만, 이민사 자료부족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텍사스 한국일보에서는 달라스 한인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달라스 초기 한인이민역사와 이민역사 정립의 중요성을 고찰한다.
<편집자주>

‘이민자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이 이민법 개정으로 제대로 이민문호를 연 건 지금으로부터 52년 전인 1965년이다.

합법적인 이민문호가 개방된 1965년 이전에는 이민문호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수의 한국인이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들어왔다. 신분은 학생이었지만 사실상 이민자였다. 이들이 형성한 초기 이민사회가 각 도시 한인 이민역사에 머릿돌을 세웠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65년 개정된 이민법은 취업을 통한 이민의 길을 열어 유럽 이민자가 주를 이루던 미국에 아시아인과 흑인,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간호사 이민이 이뤄진 것도 이 법의 의거해서다.

달라스 초기 한인사회가 급격하게 발전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달라스 다운타운에 위치한 파크랜드 병원은 미국이 한인 간호사를 유입하는데 산파역할을 한 곳이다. 달라스를 중심으로 이뤄진 한인 간호사 유입은 달라스는 물론 미주 한인사회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달라스 한인사회 일각에는 간호사 이민과 같이 합법적인 취업이민을 기준으로 달라스 이민역사를 산출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북텍사스 최초로 한인 간호사가 발을 디뎠던 1967년을 이민역사 시발점으로 보고 지난 2017년 달라스 한인사회 일각에서 이민 50주년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합법적인 취업이민을 이민역사의 시초로 봐야 한다는 시각을 가진 이들은 그 예로 하와이 이민을 든다.
하와이 이민이 있기 전 미국땅에 한인들이 살고 있었지만, 1903년을 미주 이민의 시초로 규정한 것은 하와이 노동이민이 ‘합법적 이민’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나 ‘합법적인 취업이민’을 이민사의 기준점으로 삼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하와이 이민 전 미국땅에 살아왔던 선조들의 삶은, 한인 이민역사가 ‘1903년 이전부터 있어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지, ‘1903년 이전은 이민이 아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또한 엄밀히 짚어보자면, 하와이에 도착한 최초의 한인들도 대한제국 입장에서 봤을 때만 합법적으로 보낸 이민자이지, 미국에서 볼 때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한시적 계약 노동자’일 뿐이었다.

미국이 이민법 개정으로 이민문호를 연 건 1965년부터다. 간호사 이민과 같이 합법적인 취업이민을 기준으로 이민역사를 산출하자면, 미국 내 어느 한인 커뮤니티도 이민 역사 54년을 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민 역사 산출에 있어 중요한 건 체류신분이 아니다. 일을 목적으로 한 계약노동이든, 공부를 위한 유학이든, 정치적인 망명이든 미국땅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상관없다. 낯선 땅에 정착해 터전을 닦은 시간과 삶 자체가 역사이자 기록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비롯한 전 세계 국가가 재외국민이 소지한 비자종류에 상관없이 각 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을 통틀어 ‘이민자’로 분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에 따르면 달라스를 방문한 최초의 한인은 한사윤 씨다.
1915년 북텍사스 소도시 Clarkville에 강의차 잠깐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에 의미를 새겨 1915년을 달라스 이민역사의 시초로 본다면 자그마치 달라스 한인역사는 104년이 된다. 그러나 이민의 기준이 되고 있는 ‘거주’가 아니라 ‘방문’이기 때문에 한사윤 씨를 ‘최초의 이민자’로 보는 시각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최초의 거주자는 달라스 신학교 유학생 김성락 목사다. 김 목사는 1930년부터 1년여간 달라스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그의 거주기록은 달라스 신학교 학적부에서 발견됐다.

달라스 이민역사의 시초를 1930년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최초의 거주자’였기 때문이다.
국제연합(UN)이 정한 이민의 정의, 곧 ‘1년 이상 타국에 머무는 행위 또는 그 타국에 정착 터를 잡고 살아가는 행위’에 정확히 부합하는 이민자이기도 하다.

최초의 10년 이상 거주자는 텍사스 웨슬리안 대학에서 교수로 봉직한 문장욱 박사다. 문 박사는 1949년부터 1962년까지 햇수로 14년을 거주했다.

‘장기 거주’를 이민의 시초로 봐야 한다면 문장욱 박사가 최초의 한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가 거주한 1950년대에는 10여명의 한인들이 달라스 포트워스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는 증언들이 다수 나와 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초기 이민사회를 형성한 제1기로 봐도 무방하다.

최초의 한인 공동체가 세워진 건 1966년 8월 15일이다.
달라스에 세워진 최초교회인 달라스 연합교회 홈페이지는 “1966년 광복절에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몇 가정이 석보욱 목사님 초청에 의해 모인 것을 기원”으로 삼는다고 명시한다. 교회 연혁에 의하면 이들은 1966년 8월부터 그린빌(Greenville)지역에 소재한 크리스천 교회를 빌려 월 2회 예배를 드려왔다.
초대교회 생성은 취업이민자가 도착한 1967년이 달라스 이민역사의 시발점이 될 수 없다는 명확한 증거가 되고 있다.

최초의 방문자, 최초의 거주자, 최초의 장기 거주자가 개인을 지칭한 것이라면, 초대교회는 집단, 곧 공동체 형성의 시초를 말한다.
때문에 공동체 형성을 이민사회 생성의 기준점으로만 봐도 달라스 한인이민역사의 시초는 1966년 이전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유학생 중심의 초기 이민사회에 대대적인 변혁을 가져온 건 취업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면서부터다.

1967년 4월 9일 최초의 동양인 간호사인 최만자 씨가 달라스에 도착했다. 이후 1967년 한인 간호사들이 파크랜드 병원에 유입되면서 한인사회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간호사 유입은 달라스 한인사회 성장의 기폭제가 되어 ‘커뮤니티’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1968년 유학생과 간호사를 중심으로 한 달라스 한인사회 최초의 전체 망년회가 실시됐고, 이듬해인 1969년 2월 23일 제1대 달라스 한인회장에 호원규 씨가 당선됐다.

따라서 달라스 한인 이민역사는 기준점에 따라 최대 104년(최초 방문자)에서 최소 53년(최초 공동체)로 가늠할 수 있다.

미주 이민역사는 한인사회 전통과 역사보존을 위해서라도 ‘초기역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220개 이상의 민족이 살고 있는 미 대륙에서 이민역사가 짧은 것보다 긴 것이 한인사회 위상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는 곧 힘이다. 이민사회에 터를 잡고 살아온 세월의 뿌리는 길고 오래될수록 더 큰 위상과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우리 스스로 이민을 좁게 풀이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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