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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주 칼럼] 남을 비추는 거울

by admin

아주 먼 옛날, 공주가 태어났다. 까만 머리가 대조되는 하얗고 뽀얀 피부, 선혈처럼 붉은 입술을 가진 아기공주의 이름은 백설이다.

왕비는 공주를 낳은 후 얼마 지나지 않자 죽음을 맞이했다. 왕은 새로운 왕비를 맞았다. 왕비에게는 진실만을 말하는 거울이 있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왕비님이십니다.”

마법의 거울에게 매일 아름다움을 확인받던 왕비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느날 갑자기 거울의 대답이 달라진 것.

“백설공주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왕비는 공주를 죽이기 위해 온갖 수를 동원했다. 킬러 사냥꾼을 고용하기도 했고 독이 묻은 빗을 선물하기도 했다. 급기야 직접 노파로 변장해 독이 든 사과를 먹였지만, 거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백설공주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무섭도록 처절한 왕비의 질투는 정녕 백설공주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을까.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용인할 수 없다는 건,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 결여에서 오는 역발상이다.
진실만을 답하는 신비의 거울에게 질문을 바꿔 “세상에서 가장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왕비는 그토록 원했던 “왕비님이십니다”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왕비의 자존감을 건드리고 백설공주에 대한 열등감을 끊임없이 자극한 건 거울이다. 어리석은 왕비는 거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거울의 말이라면 모든 게 진실이라고 믿었기에 끔찍한 일을 벌이면서까지 끊임없이 의존하고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동화 속 얘기만이 아니다. 현실 속에는 너무 많은 거울이 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대학은 어느 학교니”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은 누구니”

세상이 정한 기준, 남들이 쳐다보는 시선, 주변인들이 주장하는 견해를 거울 삼아 끊임없이 비교하다보면 없던 자괴감도 생기게 마련이고, 있던 자신감도 달아나기 십상이다.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경계하는 경쟁의식, 누군가에게 느끼는 질투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 흐름 중 하나다. 때로는 이것이 강력한 동력이 되어 나 자신을 한 단계 위로 끌어올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은, 질투와 경쟁의식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여기에 몸과 생각과 마음을 내맡기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왕비는 백설공주와 비견될 만큼 아름다웠다. 거울에 의존해 질투에 휩싸였을 땐 악마와 다름없지만, 거울을 내려 놓는 순간 한 나라의 아름다운 국모가 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의 비전에 집중하다보면 내가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나만의 거울을 만들어내게 된다.

벌써 한 해의 절반이 흘렀다. 거울 앞에서 끊임없이 묻고 비교하고 좌절하고 아파했다면 거울을 내려놓자. 손에 든 거울을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거울은 남이 아닌 나를 비추기 시작한다. 남을 비추는 거울을 내려놓아야 할 절대적인 이유다.

최윤주·텍사스 한국일보 대표·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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