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 가수 대거 ‘미투’…“배역 등 영향 거절 못해”
- LA 오페라 “진상조사”…예정 공연 취소 잇달아
오페라계의 ‘수퍼스타’로 군림해온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78·사진·AP)가 지난 수십년 간 동료 가수 등에게 성적으로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미투’ 논란에 휘말렸다. 도밍고가 음악계에서 가진 권위와 상징성에 비춰볼 때 메가톤급 파문이 예고되고 있다.
AP통신은 지난 2003년부터 LA 오페라 총감독을 맡고 있는 도밍고가 성악계에서 누려온 절대적인 지위를 이용해 그동안 다수의 여성 오페라 가수들과 무용수 등을 상대로 성희롱 등을 일삼아 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지난 12일 보도했다.
통신은 오페라 가수 8명과 무용수 1명 등 총 9명이 도밍고로부터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고, 도밍고의 행태가 오페라 세계에서 오래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폭로에 참여한 여성 총 9명 가운데 은퇴한 메조소프라노 패트리샤 울프만이 자신의 이름을 공개했다.
도밍고의 부적절한 행위는 1980년대 말부터 30년에 걸쳐 도밍고가 예술감독 등으로 활동했던 LA 오페라 등 미 주요 도시 오페라 극장 등에서 일어났다고 통신은 보도했다.
해당 여성들은 성악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던 도밍고가 반복적으로 원치 않은 연락을 지속하고, 노래 레슨과 연습, 배역 제공 등을 빙자해 자신의 집에 와줄 것을 요구했으며, 다리에 손을 올리거나 입술에 키스를 하는 등 원치 않은 신체 접촉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들 여성 중 2명은 당시 오페라계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던 도밍고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원하는 배역을 따내지 못하는 등 자신들의 경력에 악영향이 미칠 것이 두려워 그의 접근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메조소프라노 1명은 23세이던 1988년 도밍고를 LA 오페라에서 처음 만났으며, 도밍고가 자신이 가수로서 재능이 있다고 칭찬하며 커리어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성악가는 결혼 사실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배역 등을 미끼로 끊임없이 따로 만나자고 요구해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당시 도밍고의 말을 거부하는 것은 신에게 ‘노’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큰 위협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밍고는 성명을 통해 자신을 상대로 제기된 이 같은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30년 전까지나 거슬러 올라가는 일에 대한 익명의 개인들로부터 제기된 주장은 당혹스럽고 부정확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나를 알거나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내가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이같은 의혹 제기에 세계 주요 공연단체들이 도밍고의 출연이 예정된 공연을 취소하거나 진상 조사에 나섰다.
LA 오페라는 13일 도밍고에 대해 제기된 성희롱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LA 오페라는 “외부 변호인을 고용해 도밍고와 관련한 의혹을 조사할 것”이라며 “(우리는) 모든 우리 직원과 예술가들이 동등하게 편안하며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이번 의혹이 보도되자 각각 9월과 10월로 예정된 도밍고의 콘서트를 취소했다고 이날 밝혔다.
다음 달 도밍고가 출연하는 ‘맥베스’를, 11월에는 ‘나비부인’을 무대에 올릴 예정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도밍고에게 제기된 성추행 의혹과 권한 남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LA 오페라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종 결정을 미루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