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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집] 잃어버린 우리 땅 이름…치욕의 창지개명

by admin
  • 창지개명 목적은 식민 통치와 민족정신 말살
  • 서울 동이름의 30%가 일제 잔재


올해는 광복 74주년을 맞이한다. 1910년 한반도를 불법 강제 점령한 일본은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우리 민족의 정기를 죽이기 위해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구호를 내걸고 민족말살정책을 자행했다.
내선일체는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조선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조선을 착취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구호다.

국호 ‘대한제국’을 ‘조선’으로, 서울 ‘한성’을 ‘경성’으로, ‘순종황제’를 ‘이왕’으로 격하시키고, 한반도의 허리인 ‘백두대간’을 ‘태백산맥’으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명이나 행정구역, 산과 강 이름에 ‘크다’는 의미가 담긴 ‘대(大)’자, ‘한(韓)’자가 들어가는 명칭은 전부 바꾸거나 없애버렸다.

이름을 바꾼 창씨개명이 국민 개인의 혼을 빼앗는 일이었다면, 국가의 지명을 바꾼 창지개명은 민족의 얼을 빼앗는 잔악한 식민지배 술수였다.
일본이 전 국토의 행정구역과 마을, 강, 산의 이름을 바꾼 건 1913-14년의 일이다. 군 97개, 면 1,834개, 리·동 3만 4,233개 이름을 없애거나 바꿨다.

창지개명은 산천에 새겨진 우리민족의 정기와 역사, 지역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었다.
영일만을 에워싼 포항반도 끝의 호미곶은 대한민국 내륙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다. 한반도 지형을 호랑이에 빗댔을 때 꼬리부분이라 해서 선조들은 이 곳을 호미곶(虎尾串)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일제는 호랑이를 토끼로 둔갑시켰다. 한반도 지도를 토끼 모양으로 그려 호미곶을 ‘장기갑(長鬐岬)’이란 이름으로 바꾼 일제의 악의적인 개명은 해방 후에도 수십년동안 사용돼 오다 2001년에야 비로소 제 이름을 찾았다.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 인사동은 원래 근처에 큰 절이 있어서 ‘절골’ 혹은 ‘대사동’으로 불렸다. 하지만 일제는 1914년 근처 지명인 관인방의 ‘인’자와 대사동의 ‘사’자를 합쳐 인사동으로 이름을 바꿨다.

대학로로 유명한 동승동의 원래 이름은 잣나무가 있는 ‘잣골’이었고, 낙원동은 탑이 있는 동네라는 뜻의 ‘탑골’이 본래 이름이며, 관수동은 넓은 들이란 뜻의 ‘너더리’가 실제 지명이다.

이밖에도 병천은 아우내, 임곡은 숲실, 양수리는 두물머리, 양촌은 햇살말, 신촌은 새말이라는 순우리말 지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이름이 바뀌었다.

식민지배를 노골화한 지명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송도(松島)’다. 원래 이름이 옥련((玉蓮)이었던 송도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했던 일본 군함 ‘송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송도가 섬도 아닌데 섬을 뜻하는 도(島)라는 명칭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송도의 일본식 발음은 마츠시마(松島)다.

민족 정기를 말살하고자 지명의 한자어를 교묘하게 오염시킨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지명이 인왕산이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인왕산(仁王山)으로 쓰이던 한자에 일본이 조선 왕(王)을 누른다는 의미로 ‘일(日)’자를 붙여 ‘인왕산(仁旺山)’으로 교묘하게 이름을 바꿨으나 1995년 제자리를 찾았다.

종로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종로는 쇠북 종(鐘)자를 써 鐘路로 표기됐다. 보신각 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43년 일본은 술잔을 의미하는 ‘鍾’으로 바꿔버렸다. 종로의 의미를 폄훼하기 위한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이었다.

지명개편이 비극을 가져온 게 아닌가라는 아픔이 존재하는 곳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주민들을 북한군으로 오인해 마을 전체를 몰살하다시피 한 노른리 양민학살사건의 현장 ‘노근’의 옛 이름은 ‘사슴이 숨어있다’는 뜻을 지닌 평화로운 이름 ‘녹은(鹿隱)’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이 곳을 ‘녹슨 도끼’라는 흉물스런 일본식 한자어를 쓴 ‘노근(老斤)’으로 바꿨다.

국어학자인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장에 따르면 본래 우리 마을 이름은 △물과 관련된 이름(모래내, 곰달내, 한내, 마른내) △산지나 바위와 관계된 이름(배오개, 진고개, 등마루, 무너미, 두텁바위, 검은돌 등) △식물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복삿골, 대춧말, 가락골, 서래 등) △풍수지리와 관계된 이름(용머리, 벼루말, 시루뫼 등) △땅 모양을 따 지은 이름(쇠귀골, 학실, 바람들이, 살곶이 등)처럼 순 우리말이 대부분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언어’ 인용)

이와 관련해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은 저서 ‘세상을 바꾸는 언어’에서 “일제가 우리 땅 이름을 그들 식으로 바꾸고, 그들이 쓰는 땅 이름을 그대로 우리에게 쓴 것은 이 땅을 우리 땅이 아닌 자기들 땅으로 만들어 나가려는 속셈이었다”고 적었다.

한국땅이름학회에 따르면 서울 동(洞) 이름의 30%, 종로구 동명의 60%가 일제의 잔재다. 역사가 묻어 있는 토박이 지명은 사라지고 유래를 짐작할 수 없는 엉뚱한 지명으로 변질한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역사와 민족정기를 갈갈히 찢고 짓밟은 일제가 남긴 일본식 지명이 광복 7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사용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다행히 일본 아베정권의 경제보복 선포 이후 확산된 ‘No Japan 운동’이 일제 잔재청산운동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사라진 지명 되찾기’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전북 칠곡군 주민들은 왜관역 앞에서 지명을 바꾸자는 “왜관읍 지명을 사용하지 말자”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왜관은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인들이 건너와서 통상하던 곳으로, 부산과 울산 등 곳곳에 설치됐지만, 지명으로 굳어진 곳은 경북 칠곡의 왜관읍 뿐이다.

경기도는 각종 문헌이나 향토 사학자를 대상으로 일제 강점기 바뀐 지명사례를 조사해 지명 되찾기 작업을 벌여 나가기로 했고, 충남 홍성에서는 ‘홍주’라는 고유지명을 되찾기 위한 범군민운동본부가 발족됐으며, 경북·대구에서도 고유지명 되찾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마을의 생김새와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지명은 선조들의 유산이자 한민족의 정체성이다. 74년 전에 나라는 빛을 찾았지만, 우리 민족의 얼을 되찾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다.

‘제2의 항일운동’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는 이번 운동이 각 분야에 산재한 일제 잔재를 털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최윤주 기자 choi@koreatimest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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