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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눈치

by admin
한국말에는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다. 대표적인 게 “그거 말 되네~”라는 표현이다. 
‘말이 된다’는 말은 없다. 
‘말이 안된다’는 표현은 있지만 ‘말이 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원래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에는 유난스런 수식이 필요없다.
이것이 우리 말의 법칙이다.
‘눈치’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재미있는 단어다. 
눈치를 살핀다는 것은 눈의 치수를 잰다는 뜻이다. 
눈의 크기를 재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뜻이다. 
어느 나라 말이 이처럼 창의적이고 은유적일까. 
선조들의 명철과 해학이 놀라울 뿐이다.
눈치는 말 그대로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눈치가 빠르다’ ‘눈치를 채다’는 어떤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빠르게 알아차리는 것을 뜻하고, ‘눈치가 보이다’ ‘눈치를 살피다’ ‘눈칫밥을 먹다’는 상황파악이 끝난 후의 행동들이 희화된 표현들이다. 
사람은 자고로 눈치가 있어야 한다. 
눈치가 있는 사람은 상황판단이 빠르고, 눈치가 없는 사람은 분위기 파악에 둔하다. 
한국사람에게 눈치가 얼마나 중요하면 ‘눈치 코치’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눈’만으로는 모자라서 ‘코’로까지 주변상황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말이다. 
눈치에는 말이 필요없다. 
표정의 변화, 목소리의 톤, 눈꼬리의 위치, 입꼬리의 실룩거림이 판단요소다.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갈수록 눈치의 촉각은 더욱 맹렬하게 발동한다.
허나 그다지 긍정의 의미로는 들리지 않는다. 
‘눈치를 본다’는 말 안엔 왠지 당당하지 않은 느낌이 잔뜩 묻어 있다. 
이어령 교수가 눈치를 일컬어 “강자에 대처하는 약자의 방어기전”이라고 정의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권의 눈치가 가관이다.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고, 눈치가 바닥이면 받아놓은 밥상도 걷어찬다더니, 새우젓을 갈망하는 이들의 눈치보기가 거의 신공에 가깝다. 
떠들썩했던 청와대 문건 유출 수사가 결국 의혹과 불신만 키운 채 용두사미가 됐다. 
검찰 수사 결과는 사건 초기 박 대통령이 한 말 그대로다. 
박대통령이 “찌라시”라고 하니 검찰은 “사실무근의 자작극”이라고 결론지었고, 대통령이 “문건유출은 국기문란”이라고 하니 검찰 또한 “권력투쟁으로 나라를 흔든 사건”이라고 못박았다.
검찰 수사는 서둘러 마무리됐지만 의혹은 여전하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검찰수사 내용을 믿는 국민은 10명 중 2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사건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30일(금) 대법원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과 관련해, 경찰수사를 축소하고 은폐한 당사자인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불법선거운동으로 보기에는 입증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대통령 선거 직전에 판세를 가른 허위 중간수사결과는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됐다.
다른 ‘눈치’도 보인다. 새누리당 얘기다. 
지난해 7월 ‘친박’계의 핵심인 서청원 의원을 꺾고 김무성 의원이 새누리당 당대표가 되더니, 이번엔 ‘비주류’ 유승민 의원이 ‘친박’으로 꼽히는 이주영 의원을 큰 차이로 누르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아직 대통령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는데 여당 내에서 주류가 급격히 몰락하는 양상이 벌어진 건 이례적이다. 
정치권이 국민들의 마음을 조금은 눈치챈 모양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눈치는 빛을 발하지 못한다. 눈치가 발동하는 세계에는 불합리와 비상식이 판을 친다. 
흘깃흘깃 곁눈질로 살피고 목소리의 높낮이를 측정해 의중을 짐작해야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는 불행하다. 
이리 저리 둘러봐도 세상 돌아가는 눈치가 수상쩍다.
최윤주 편집국장 choi@koreatimest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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