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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주 칼럼] 일상화된 ‘피비린내’

by admin
1492년 콜럼부스의 배가 카리브 해안에 닿은 것은 역사적인 실수였다.

 

이 실수를 미국 역사는 ‘위대한 신대륙의 발견’이라 부른다.

 

광활한 대지 위에서 목가적인 평온함을 영위했던 원주민들에게

 

탐욕 가득한 유럽인들의 침입은 재앙이었다.

 

평화롭던 원주민들의 땅에 피의 역사가 시작된 건 이 때부터다.

 

 

인디언 추장을 꼬드겨 유리구슬·낚시바늘 등

 

24달러 어치의 잡동사니로 지금의 맨하탄을 빼앗은 건 애교다.

 

처녀림같던 산천이 피로 물들었다.

 

‘가장 아름다운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는 끔찍한 언어가 입증하듯,

 

무차별 학살이 수백년간 자행됐다.

 

1,000만명을 넘었던 아메리카 원주민은 19세기말 30만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잔혹한 인디언 소멸전쟁의 결과였다.

 

 

호주의 역사도 원주민에 대한 잔인무도한 학살 위에 건립됐다.

 

황금 채굴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목을 잘랐고,

 

어린 아이는 노예로, 부녀자는 강간의 대상으로, 남성은 사냥감이 됐다.

 

반항하면 코와 귀가 잘려져 나갔다.

 

스페인의 한 신부는 ‘서인도제도의 역사’라는 책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가장 잔인한 학살이었다”고 적었다.

 

 

침략과 학살, 정복과 착취를 빗겨간 역사는 없다.

 

세계사는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인간이 저지른 잔혹함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의 연속성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산 사람의 목을 자르고 태워 죽이고

 

철창 속에 가둬 물 속에 넣어 죽이는 이슬람국가(IS),

 

어린 소녀를 납치해 성노리개로 삼는 보코하람,

 

어린 아이들의 몸에 폭탄을 달아 자살폭탄으로 이용하는

 

알카에다가 대표적인 예다.

 

 

종교에 눈이 멀고

 

이념에 이성을 잃은 일부 사람들의 광기라고 보기엔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이슬람 전사들의 수가 수상쩍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중반에서 2015년 3월 사이

 

이슬람 전사의 수는 무려 71%나 증가했다.

 

출신국가 또한 프랑스·러시아·핀란드·모로코 등 전 세계로 확산돼

 

100개국 출신의 2만 5,000여명이

 

이슬람 무장단체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걸프전 10년을 기념했던 지난 2001년,

 

외신을 통해 보도된 이라크 어린이의 그림이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림에는 해골모습을 한 ‘Uncle Sam(미국을 의미)’이

 

이라크 지도를 칼로 난자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의 그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섬뜩한 증오가 묻어난 그림 속에는

 

끝나지 않을 전쟁의 후유증이 담겨 있었다.

 

 

전쟁이 빚어낸 참상은

 

지워지지 않는 독한 피비린내를 인간에게 안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쟁을 싫어한다.

 

 

아니다. 사람들은 전쟁을 좋아한다.

 

무궁무진한 컴퓨터 게임이 있지만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만큼 인기있는 것은 드물다.

 

컴퓨터를 몰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스타크래프트나 포트리스, 삼국지 등은

 

모두 전쟁을 모방한 컴퓨터 게임이다.

 

 

‘엉클 샘의 난자’를 그린 아이가 청년이 됐을 지금까지도

 

피의 복수는 끊이지 않고 순환되고 있다.

 

급증하는 테러리스트,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자살테러 속에

 

무고한 이들의 영혼을 제물로 삼은 전쟁이 일상화되고 있다.

 

 

어느덧 우리는 피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쥐어짜면 피가 뚝뚝 떨어진다는

 

역사책의 현재 진행형 속에서.

 

 

[코리아타임즈미디어] 최윤주 편집국장
choi@koreatimest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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