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재외동포사회를 ‘디아스포라’라고 부르지 말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가 혼탁하고 모호한 개념 사이에서 겉돈다면, 사회 구성원들은 말과 생각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불분명한 의미를 품은 언어가 언론이나 사회기관에서 무분별하게 쓰인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눈에 가시처럼 밟히는 단어가 바로 ‘디아스포라’다.
“750만 한인 디아스포라 공공외교 토론회” “한반도 통일과 코리안 디아스포라” “경기도, 코리안 디아스포라 플렛폼 만든다” “한민족 디아스포라 선교대회” “코리안 아메리칸의 디아스포라적 정체성”…
너무나 쉽게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를 접한다. 신문기사는 물론이거니와 책·논문·학술지·포럼·예술관·전시회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재외동포 관련 행사나 학술모임에서는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디아스포라의 뜻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문맥상 재외동포사회를 빗대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의 진정한 의미와 뜻을 안다면, 섣불리 나라밖 동포사회를 ‘디아스포라’에 비유할 수 없다.
‘디아스포라’는 유대인들이 조국에서 추방돼 강제적으로 전 세계에 뿔뿔히 흩어져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디아스포라’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거치며 가나안땅의 최강국 역사를 이어가던 유대인들이 남북으로 분단된 후 각각 멸망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슬픈 역사를 담고 있다.
국가재건을 노린 유대인들의 방랑생활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까지 수천년동안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전 세계 유대인 1,450만명 중에 이스라엘로 돌아온 유대인은 600만명에 불과하다.
물론 언어는 생물(生物)이다. 인간사회의 사고체계와 시대에 따라 퇴화와 진화를 거듭하고 확장성을 갖는 게 언어다. 하지만 ‘디아스포라’는 다르다. 영어권에서 ‘디아스포라’는 본래 의미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Diaspora describes people who have left their home country, usually involuntarily to foreign countries around the world. Examples of these communities include the removal of Jewish people from Judea, the removal of Africans through slavery, and most recently the migration, exile, and refugees of Syrians.
(디아스포라는 대체로 본인의지와 상관없는 이유로 고국을 떠난 사람들을 뜻한다. 이러한 공동체의 예로는 고대 유대땅에서 쫓겨난 유대인, 노예로 팔려간 아프리카 사람들, 가장 최근에는 시리아인의 이주·망명·난민들이 있다.)
구글(Google)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디아스포라의 정의다. 이 뿐 아니다.
After fleeing the Middle East, a large Muslim diaspora moved to Europe.(중동에서 탈출한 후 거대규모의 무슬림 디아스포라가 유럽으로 이주했다.)
A diaspora of Irish immigrants moved to my city during the potato famine.(아일랜드 이민자 디아스포라가 감자 기근 때 우리 도시로 이주해왔다.)
When war broke out in their home country, a diaspora of refugees settled in a neighboring nation.(고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피난민들은 이웃나라에 정착했다.)
영어 예문을 소개하는 words in a sentence.com에서 몇 개의 문장만 살펴봐도 디아스포라가 특정조건에 따른 비자발적 이민자 그룹을 뜻하며, 일반적 의미에서의 ‘이민사회’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정확한 언어 선택과 사용은 사회적 약속이자 사회질서 유지의 핵심행위다. 무책임한 언어 사용은 사회 구성원의 생각과 감각을 갉아먹는 독이 된다.
뱉고 쓰는 언어에 따라 생각의 틀이 바뀌고 개념이 달라진다. 언어의 중요성이다. 정확한 검증없이 용어를 쓰게 되면 개념 정립에 혼돈이 생기고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며 지식의 대중화에도 장애가 된다.
어원이나 유래는 차치하고서라도, 750만 재외동포사회는 ‘디아스포라’가 아니다. 당당하게 전 세계에 자리잡은 대한민국의 보이지 않는 국력이고, 각 거주국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자랑스런 한민족이다.
더 이상 재외동포사회를 ‘디아스포라’로 표현하지 말라.
최윤주 발행인 choi@koreatimest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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