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13달러 임대료 보다 한국방위비 10억달러 받는 게 쉬워” 외교적 무례 도 넘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열린 한 재선 캠페인 모금 행사에서 한일 지도자의 억양을 흉내내면서 자신의 외교 성과를 자화자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을 포함한 외국 지도자의 말투를 흉내내거나 조롱에 가까운 표현으로 공격하는 외교적 무례를 자주 범해 미국의 리더십 실추를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뉴욕 햄튼에서 열린 재선 캠페인 모금 행사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임대료를 수금하러 다녔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브루클린의 임대 아파트에서 114.13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달러를 받는 게 더 쉬었다”고 말했다. 올 초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은 당초 마지노선으로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을 제시했다가 최종적으로 전년 대비 8.2% 인상된 1조 389억원에 타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임대료 수금 경험에 빗대 손쉽게 인상했다고 과시한 것이다.
그는 또 한국에 대해 “그들은 훌륭한 TV를 만들고 경제도 번창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왜 우리가 그들의 방위비를 내야 하는가. 그들이 지불해야 한다”며 방위비 추가 인상에 대한 의지도 강하게 드러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거친 협상 방식에 문 대통령이 어떻게 굴복했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억양을 흉내냈다고 뉴욕포스트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관련해서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관세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가짜 일본어 억양을 구사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조종사였던 것으로 알려진 아베 총리의 부친을 거론하면서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이 술이나 약에 취해 있었냐”라고 물었더니 아베 총리는 “그들은 단지 나라를 사랑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유럽연합(EU)에 대해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방위비 분담금을 내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EU에게도 재차 안보 분담금 확대를 요구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뉴욕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EU 등 미국의 동맹들을 놀렸다”고 지적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선 “이번 주 김 위원장과 아름다운 편지를 받았다. 우리는 친구다. 사람들은 김 위원장이 나를 볼 때 항상 웃고 있다고 말한다”며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연설 동영상은 공개되지 않아 어떤 식으로 흉내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적수를 조롱하기 위해 즐겨 쓰는 수법이 상대의 말투나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는 것이다. 특히 동맹국 정상을 비롯한 외국 지도자들도 가리지 않고 공개 석상에서까지 흉내를 내며 비하하는 모습을 보여 외교적 물의를 야기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주지사를 상대로 연설하는 자리에서 인도와의 관세 문제를 설명하면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영어 억양을 흉내 내 인도 측의 반발을 불렀다. 당시 인도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흉내 영상을 보도하면서 백악관 회의 때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며 강한 불쾌감을 표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순방을 다녀온 후 가진 연설에서도 아시아 지도자들의 행동을 흉내내며 조롱해 논란을 낳았다. 아시아 지도자들에게 방위비 인상을 요구했더니 그들이 보인 반응이라며 어깨를 구부리고 눈을 크게 뜨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태도를 지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2월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억양을 흉내 내 중국을 격분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흉내뿐만 아니라 트윗을 통한 직설적인 조롱 등으로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동맹국 정상을 공격해 외교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 우선주의 노선 아래서 방위비 인상이나 무역 협상에서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지만 안하무인식의 외교적 무례로 수십 년간 쌓아온 동맹 관계를 훼손해 미국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한 칼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존경 받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을 경멸과 혐오,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며 “다른 정상적인 후임자가 뒤를 잇더라도 그 악영향을 복구시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