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
윤석열은 대통령이란 막중한 자리가 버거워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뿐더러 지난 대선 후보 시절부터 취임 후 국가 지도자로서 그의 언행을 보면 무능력, 무지성의 함량미달에 럭비공처럼 도대체 어디로 튈 지 짐작조차 불가능한데다 분노조절 장애마저 갖고 있어 더 이상 나랏일을 맡기기엔 극도로 위태로운 인물이다.
그런 그가 기어코 한국 현대사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21세기에 평온한 사회에서 군대를 동원한 내란이라니 세계가 경악했고 군사독재 정권을 경험해 그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우리 국민들을 공포와 두려움의 큰 혼란 속으로 빠뜨렸다.
만약에 국민을 배신한 윤석열의 반헌법적, 반민주적 친위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그 이후에 벌어졌을 일들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계엄령 치하의 모든 나라가 그러했듯 야당의 정치 지도자들은 구금되고 국민 또한 누구라도 영장 없이 체포 구금이 가능하고 언론과 출판, 방송, SNS 등은 엄격히 통제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언로가 막히고 일체의 정치적 활동이 봉쇄되고 문화와 예술활동까지 실종되는 역사의 퇴행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사라진 줄 알았던 군사독재의 부활인 것이다.
이번 계엄사 포고문에는 윤석열의 대국민 정신자세가 여실히 드러난다. 48시간 이내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지 않는 전공의는 처단하고 포고령을 위반한 시민에 대해서도 법에 의거 처단하겠다는 협박인데 국민의 생명을 자의적 판단으로 빼앗을 수 있다는 윤석열 표 계엄법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세계사에 그 유례가 없는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유일한 국가인 대한민국의 위상과 정체성을 일순간에 무너뜨린 윤석열의 느닷없는 반역행위는 그 후과를 가늠하기 조차 힘들다.
4.19, 5.18, 6.10 민주화 항쟁을 거치며 민중들의 피와 희생으로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근간을 통째로 흔들고 윤석열이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고작 정적을 제거하고 본인과 김건희의 모든 사법적 리스크를 덮고 후환을 없애고자 한 주술과 무속에 심취한 자의 어처구니 없는 범죄인가 아니면 윤씨 왕조를 열고 영구 통치라도 꿈 꾼 것인가?
윤석열의 헌정질서 파괴, 반국가적 내란을 겪으며 대다수 국민들이 느낀 감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두려움과 수치심, 모욕감이었다. 윤석열은 6.10 민주화 항쟁 이후 사십 년 가까이 지나 이젠 민주주의가 뿌리 내린 줄 알았던 국민들의 사회적 자부심을 우롱했고 실상은 무지랭이 취급을 받고 있었다는 고통스런 자각을 무력으로 깨우쳐주었다.
윤석열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모자란다. 대의 민주정치가 무엇이며 공무원과 군인의 정치적 중립은 왜 반드시 필요한지,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은 국정운영에 어떻게 필요한지 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이제 차례가 바뀌었다. 윤석열 당신이 저지른 국가와 민주정에 대한 군사 반란 행위의 죄값을 국민이 깨우쳐 줄 것이다.
국민의 힘 의원들에게도 묻는다.
윤석열 탄핵안 찬반투표를 할 때 당신들은 개별적 입법기관으로써 권리이자 의무를 포기하고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윤석열의 반민주적, 국헌문란 친위 쿠데타를 보고 본인의 생각이 없지 않았을 텐데 무엇이 투표장 불참의 방식으로 반대표를 던지게 했는가?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욕망의 수단으로 정치를 하지 않는 한 어떻게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대통령의 군사반란을 보고도 탄핵을 가로막는가? 당리당략과 개인의 영달이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인가?
정치에 몸 담고 있는 동안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을 놓지 않기를 촉구한다. 언제나 국가의 주인인 민중이 이겨왔고 미래에도 민중이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