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정쟁과 분열, 이념 갈등의 빌미로 삼지 말라.
한민족 역사는 단 한번도 찢어진 우산을 용납하지 않았다. 준엄한 역사의 경고다.
“1945년 8월 15일 광복되어졌다, 그게 광복절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참 많아요. 그게 역사를 정확하게 모르는 겁니다.”년 나라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지난해 말 보수단체 강연에서 한 발언이다. 그는 이 강연에서 8월 15일이 광복절이 아닌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1948년 8월 15일날 정부를 세우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서부터 대한민국이 시작되는 겁니다.”
1948년 8월 15일 이전엔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1945년 어둠에서 빛을 되찾은 광복, 즉 나라를 되찾았다는 광복절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형석의 발언은 일제 강점기를 견딘 우리 선조들의 국적을 ‘일본’으로 만들어 버리는 역사적 패륜이다.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을 계기로 건립된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심각한 역사 왜곡이다.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을 계기로 4월 10일 상하이에서 모인 항일 투쟁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의정원을 창설, 국호와 정부형태, 임시헌법등을 논의한 후 다음날인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大韓民國臨時政府成立祝賀文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 축하문 |
十年의 奴隸生活을 脫하야 今日에 다시 獨立大韓의 國民이 되엿도다
10년의 노예생활을 벗어나 오늘에 다시 독립대한의 국민이 되었도다. (중략)
我國民은 다시 異民族의 奴隸가 아니오 ᄯᅩ한 다시 腐敗한 專制政府의 奴隸도 아니오 獨立한 民主國의 自由民이라.
우리 국민은 다시 이민족의 노예가 아니요 또한 다시 부패한 전제정부의 노예도 아니요 독립한 민주국의 자유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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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에 게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 축하문’ 중 일부다. 명백한 국민주권의 선포다.
신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된 김형석의 발언대로라면 일제강점기(일본제국주의강제점령기)동안 우리 민족은 없다. 한반도가 일본 땅이었고, 그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본인이었다는 의미다.
일제 강점을 합법화시키는 그의 발언대로라면 독립운동의 역사는 송두리째 사라진다. 3.1운동은 반정부 시위이가 되고, 광복을 위해 목숨 바쳐 일제에 총칼을 든 독립운동가들은 국가 전복을 꾀한 테러리스트가 된다. 1919년 4월 11일 수립된 자랑스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반란 수괴인 반국가 단체가 된다.
식민 통치 하에 끌려간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도, 성노예를 강요당한 일본군 위안부도, 일본의 말대로 ‘국가 총동원령’에 따라 징집된 정당한 절차로 둔갑한다.
문제는 김형석 관장 개인이 아니다.
거짓을 역사로 둔갑시키는 저열한 역사관이 피로 쓴 광복의 빛을 가리는 지금, 우리는 찢어진 우산을 든 채 서있다.
독립역사를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무시한, 소위 뉴라이트 성향으로 분류되는 친일 인사들이 현 정부 들어 애국과 민족의 자긍심을 요하는 주요 요직에 임명되고 있다. 독립기념관을 비롯해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과거사정리위원회’, 국가기록관리위원회 등이 대표적이다.
야권에선 “윤 대통령은 친일·매국 대통령이고 대통령실은 조선총독부가 아니라 용산총독부”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을사오적, 정미칠적에 이어 1910년 경술국치에까지 이름을 올리며 진심을 다해 나라를 팔아먹은 역사적 친일 매국노 이완용에 대한 분개가 오버랩 되는 이유다.
일본 제국에 의해 대한제국이 일시적으로 주권을 침해당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망명정부를 세우면서까지 국민주권을 지켰고 목숨을 건 항일투쟁을 선도하며 국가로서의 위엄을 지켰다.
일제에 항거한 항일운동과 독재에 투쟁한 민주주의 역사를 쥐어 짜면 순국열사와 민중들의 피가 뚝뚝 떨어진다. 피로 쓴 역사다. 핏빛 투쟁으로 세운 나라다. 감히 그 누구도 그 피를 더럽힐 수 없다.
역사를 정쟁과 분열, 이념 갈등의 빌미로 삼지 말라. 한민족 역사는 단 한번도 찢어진 우산을 용납하지 않았다. 준엄한 역사의 경고다.
최윤주 발행인 choi@koreatimest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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