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주 기자 = 코리아 타임즈 미디어]
드디어 그들이 집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체포돼 이민 구금시설에 억류된 지 일주일만이다.
지난 2025년 9월 4일, 대규모 이민단속에 체포된 이는 약 475명이다. 이중 한국인은 남성 307명, 여성 10명으로 총 317명이었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단일 장소에서 실시된 최대 규모 단속이라고 발표했다.
한국 기업을 타겟으로 벌어진 대규모 이민단속에 나라 안팎이 들썩였다. 동맹국이자 우방국인 미국에서 벌어진 일에 정치·경제·사회적 해석이 난무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한국 기업’을 겨냥한 단속으로 보는 일부의 시각은 분명히 잘못됐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이민 단속은 정치적 해석이 필요치 않은 ‘일상’이고 인종을 가리지 않는 ‘정책’이다.
2019년 4월 북텍사스 소재 한인 기업 CVE 테크놀러지 그룹에 ICE가 덮쳤다. 달라스 한인사회에 명망있는 경제인이 운영하던 사업체였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직원 284명이 체포됐다. 단속시점 기준 지난 10년간 단일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최대 규모의 이민단속이었다.
달라스 한인사회를 충격과 경악에 빠뜨린 사건이지만, 이를 ‘한인 기업’을 대상으로 한 단속으로 이해한 한인들은 거의 없었다. ‘합법’과 ‘불법’이 가진 무거운 의미를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을 우회한 방식에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법을 우회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에 있다.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B-1(출장) 비자나 비자없이 미국에 입국한 외국인이 개인정보를 등록하는 ESTA 등의 단기 체류 수단으로 실제 기업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미국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이민 단속은 법 집행 차원에서 행해진 정당한 조치다. 이를 문제삼는 것은 남의 나라 법과 정책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꼴이다.
문제는 합법적 취업비자나 노동허가를 확보하는 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이는 미국 내 외국인 인력 의존도가 높은 모든 기업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다.
최근 한국 기업들은 세계적인 전기차·배터리 산업 붐 속에서 미국 생산기지를 확장, 현지 전문 인력 확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취업비자(H-1B), 주재원 비자(L-1), 투자비자(E-2) 등 합법적 신분 확보의 벽은 높아도 너무 높다.
특히 일반 전문직 노동자들이 취득하는 H-1B 비자는 연간 65,000개의 정규 쿼터와 20,000개의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 쿼터로 인해 해마다 경쟁률이 심화되고 있다. 2022년 30만명을 넘었던 H-1B 비자 신청자는 2024년 78만명까지 급증하며 해마다 ‘하늘의 별따기’를 방불케 하는 실정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에 별도로 할당된 전문직 비자 쿼터가 없다는 데 있다.
미국은 H-1B 비자와는 별개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일부 국가들에 대해 국가별 연간 비자 쿼터를 제공하고 있다. 캐나다(무제한)·멕시코(무제한)·호주(10,500명)·싱가포르(5,400명)·칠레(1,400명) 등 5개국이 이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 체결국이자 미국내 최대 투자국인 대한민국에 할당된 전문직 취업비자는 없다. 한국인들이 미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취업하는데 심각한 제약이 될 수밖에 없다.
외교부는 지난 7일 “2012년 이후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 쿼터(E4 비자)를 신설하는 ‘한국 파트너 법안(PWKA·Partner with Korea Act)’ 입법을 위해 미국 정부·의회를 대상으로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파트너 법안(PWKA·Partner with Korea Act)’은 2013년 이후 미 의회 회기 때마다 꾸준히 발의된 법안이다. 심지어 2025년에도 미 의회에 발의된 상태다. 그러나 번번이 법안 통과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제 제자리 걸음을 멈춰야 할 때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이번 구금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 기업이 미국 이민법을 준수할 것을 경고했지만, 동시에 미국은 전기차·배터리 산업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 기회다. 한국 기업이 제도적 장벽을 극복하면 미국 내 한국 인재들의 전략적 가치는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
편법과 불법에 대한 경고인 이번 사건은 역설적으로 한국 기업이 미국시장에 제도적으로 입성할 수 있는 기회다.
합법적 제도 없이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은 묘연하다. 한국 전문인과 한인 유학생 등 한인 인재들의 미주사회 진출 또한 막연하다.
이번 단속은 한국 기업과 전문 인재에게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사건이 됐다.
편법은 단속으로 끝나지만, 제도는 기회로 남는다.
한국이 제도를 열지 못한다면, 기업과 인재는 악순환 속에서 제 발목을 잡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을 연다면, 한국은 미국 산업의 핵심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최윤주 발행인 editor@koreatimest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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