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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거짓말의 시조가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시킨 뱀이었다면,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르메스의 거짓말을 꼽을 수 있다.
헤르메스는 형 아폴론의 소를 훔쳐가면서 소의 꼬리를 끌어 뒤로 걷게 하고,
자신도 신발을 거꾸로 신어 도둑행각을 가렸다.
화가 난 아폴론이 헤르메스를 제우스에게 끌고 가 진실을 밝히려고 하자,
그는 교묘히 질문을 피하면서 거짓말로 결백을 주장했다.
거짓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토리’가 필요한 장르에 없어서는 안되는 주요 요소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탈리아의 극작가 카를로 로렌치니의 피노키오와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 이야기도 거짓말이 스토리의 중심축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내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체면 때문에 괜찮다고 사양하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것도 모두 일종의 거짓말이다.
거짓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드러내기 보다 감추는 것이 아름다울 때 거짓말은 순기능을 한다.
사진의 ‘아웃 포커싱’처럼
목표물만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주변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언어기법은
때에 따라 ‘용서될 수 있는 하얀 거짓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얀 거짓말조차 허용되지 말아야 할 영역이 있다.
바로 언론이다.
NBC 방송의 간판앵커인 브라이언 윌리엄스의 ‘거짓말 논란’이 세간의 화제다.
미국 언론 역사를 따져봐도 바버라 월터스나 월터 크롱카이트 정도를 제외하면
그보다 더 인기많고 신뢰도 높은 언론인은 많지 않다.
그런 그가 언론계에서 순식간에 퇴출됐다.
2003년 이라크전 취재 당시 실제상황을 왜곡보도한 것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윌리엄스는 2003년 당시 그가 타고 가던 군용헬기가 로켓포탄을 맞아서 위험했으나
군인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무공훈장을 받은 군인을 소개하는 뉴스에서
2003년의 상황을 다시 언급했다.
사태는 이 때부터 급진전했다.
당시 로켓포탄을 맞았던 헬기 조종사가 페이스북에
“당신은 내 비행기에 타고 있지 않았다”고 글을 올렸고,
사고 한 시간 후 윌리엄스를 태우고 갔던 헬기 조종사까지 등장해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조롱했다.
12년간 지속돼 온 그의 거짓말이 만천하에 들통난 셈이다.
기사란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기자란, 거짓을 숨기지 않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거짓 보도의 회오리 속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세월호와 관련한 보도에서부터
최근 정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는 성완종 게이트까지
왜곡되고 뒤틀린 거짓보도가 판을 친다.
달라스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8일(토) 열렸던 달라스 노인회 월례회와 관련해
“노인회가 임시총회를 갖고 7인의 선관위원을 만장일치로 추인했다”고 보도한
모 신문의 기사를 보며 씁쓸한 마음을 걷어내기 힘들다.
임시총회와 선관위 추인은커녕 고성과 폭언이 오가다
끝내 월례회가 흐지부지 끝나 버린 건
이날 참석한 노인회원들과 현장에 있던 기자 모두가 함께 목도한 사실이다.
만일 기자가 착각을 했더라도
어느 한 사람만 잡고 물었어도 쉽게 사실확인을 할 수 있는 사안이다보니,
혹여 노인회 선거를 불법 강행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오보를 자처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지경이다.
문득 탈무드의 명언 한 구절이 떠오른다.
“거짓말쟁이가 받는 최대의 벌은, 그가 진실을 말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이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
언론만큼은,
기자만큼은,
그 형벌의 대상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최윤주 편집국장 choi@koreatimest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