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위원장과 만남 기대했으나 불발
북미 양측 정상이 군사분계선(MDL)을 넘나든 ‘세기의 만남’이 이뤄진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철저히 조연 역할을 자처했다. 북미 관계라는 큰 바퀴가 굴러가면서 맞물려 돌아가는 남북관계의 선순환 구조를 우선으로 한 판단이라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주인공, 한반도의 피스메이커”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30일)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판문점 상봉이 남과 북 국민 모두에게 희망이 되고 평화를 향한 인류 역사의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도 “저도 오늘 판문점에 초대 받았다. 그러나 오늘 중심은 북미 간의 대화다”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과의 상봉과 대화가 앞으로 계속된 북미 대화로 이어지는 과정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북미 정상 간 만남을 마련한 ‘주인’이 아니라 ‘손님’ 역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 내 오울렛 초소(OP)를 방문하고, 김 위원장과 판문점에서 만나고 헤어질 때까지도 이런 입장을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DMZ에서 만나러 이동할 때도 ‘자유의 집’ 내에서 머무르다가 두 정상이 5분가량 대화한 뒤에야 합류해 환담을 나누다가 두 정상을 회담장으로 안내했다. 약 53분간 진행된 북미 회담이 끝나기를 기다린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북측으로 돌아가는 김 위원장을 배웅했다. 문 대통령은 MDL 앞에서 김 위원장과 포옹한 뒤 짧은 재회를 마무리했다.
문 대통령이 몸을 낮춘 건 북미관계 교착 및 지지부진한 남북관계 등 최근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오늘은 북미 간의 대화에 집중하도록 하고 남북 간의 대화는 다음에 다시 도모하게 될 것”이라며 “모든 일이 한 방향으로만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똑바로 나아갈 때도 있지만 구불구불 돌아갈 때도, 때로는 멈출 때도, 때로는 후퇴할 때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하노이 회담 후 끊어지다시피 한 북미 대화를 다시 이어가는 데 주안점을 둔 것 같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내심 김 위원장과의 회담도 기대했지만 결국 불발돼 아쉬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측은 북미 정상회담 직후 남북 정상회담에 대비해 ‘자유의 집’ 뒤편의 ‘평화의 집’에 회담장을 꾸렸지만, 김 위원장이 바로 돌아가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 등 북측 관계자는 북미 회담에 앞서 사전 점검하는 과정에서 회담이 이루어진 ‘자유의 집’은 물론, ‘평화의 집’도 살펴봤다.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등 한미 양국 관계자들이 북미 회담장에서 ‘평화의 집’까지의 동선도 검토했다. 하지만, 당초 30분가량으로 예상됐던 북미 회담이 예상 외로 길어져 1시간 가까이 이어지면서 남북 정상 간 만남은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 = 안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