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에 재정 부담될 경우 영주권 발급 불허
- 가족기반 이민 줄이고 능력기반 이민 장려
불법이민과의 전쟁을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12일 저소득층의 합법적 이민을 어렵게 하는 새 규정을 발표했다.
정부에 재정적 부담이 되는 경우 영주권 발급을 불허하는 기존의 규정을 확대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따라 영주권 신청자 가운데 수십만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로이터·AP통신과 CNN방송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날 합법이민 심사에 적용할 837쪽 분량의 새 규정을 발표했다.
10월 중순부터 적용되는 새 규정은 소득 기준을 맞추지 못하거나 공공지원을 받는 신청자의 경우 일시적·영구적 비자 발급을 불허할 수 있도록 했다.
식료품 할인구매권이나 주택지원,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프로그램인 메디케이드 등의 복지 지원을 받는 생활보호 대상자의 경우 영주권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기존에도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영주권 발급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었으나 주로 소득의 50% 이상을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이들에 한해 적용되면서 발급이 불허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새 규정에는 ‘자급자족의 원칙’이 명기됐다.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공공자원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능력이나 직장 등 사적 기관 및 가족의 뒷받침으로 생활이 가능한 이들을 중심으로 영주권을 발급한다는 취지다.
이민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새 규정하에서는 가족기반의 영주권 신청자 절반 이상이 거부될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얻은 이민자가 함께 살기 위해 가족을 초청하는 경우로, 2007∼2016년 영주권 발급자 중 가족이민이 약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도 “연간 평균 54만4천명이 영주권을 신청하는데 38만2천명이 (생활보호 대상) 심사 카테고리에 든다”면서 여파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 가운데 가장 과감한 조치”, “합법이민을 제한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공격적 노력 중 하나”라고 평했다.
이민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이번 조치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을 차별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하며 합법적 미국 거주자들이 필요한 정부지원을 포기하도록 할 것이라고 비판한다고 CNN은 전했다.
CNN은 “이번 조치는 소득이 적거나 교육을 적게 받은 신청자의 경우 향후 정부지원을 필요로 할 가능성이 커서 영주권 및 비자 발급을 불허당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를 통한 법 개정을 피한 채 기존의 규정 적용을 강화하는 우회적 방식으로 합법이민 제한을 도모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조치는 가족기반 이민을 제한하고 능력을 기반으로 이민정책을 손질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고학력자와 기술자를 우대하는 능력기반의 이민정책을 발표했으며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우려가 제기돼 법 개정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