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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주 칼럼] 총기난사 희생자를 애도하며

by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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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콜럼부스의 배가 카리브 해안에 닿은 것은 역사적인 실수였다. 이 실수를 미국 역사는 ‘위대한 신대륙의 발견’이라 부른다.

평화롭던 원주민들의 땅에 피의 역사가 시작된 건 이 때부터다. 광활한 대지 위에서 목가적인 평온함을 영위했던 원주민들에게 탐욕 가득한 유럽인들의 침입은 재앙이었다.

인디언 추장을 꼬드겨 유리구슬·낚시바늘 등 24달러 어치의 잡동사니로 지금의 맨하탄을 빼앗은 건 애교다.

‘가장 아름다운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라는 끔찍한 언어가 입증하듯, 무차별 학살이 수백년간 자행됐다. 처녀림같던 산천이 피로 물들었다.

1,000만명이 넘었던 아메리카 원주민은 19세기말 30만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위대한 신대륙의 발견’은 잔혹한 인디언 소멸전쟁으로 완성됐다.

세계사는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인간이 저지른 잔혹함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략과 학살, 정복과 착취 속에서 죽고 죽이는 살육을 빗겨간 역사는 없다. 세계사를 쥐어 짜면 피가 뚝뚝 떨어진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피의 연속성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2023년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5월 8일(월) 현재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난사만 207건이다. 이로 인해 282명이 죽고 814명이 다쳤다. 가히 ‘악몽의 2023년’이다.

총성은 한인사회라고 빗겨가지 않았다. 2022년 5월 헤어월드 총격사건이 벌어진 이래 고 신진일 씨 사건, 해피데이 총격살인 등 지난 1년간 한인이 직접 연루된 총격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혐오에 눈이 멀고 분노에 이성을 잃은 일부 사람들의 광기라고 치부하기엔 총이 주는 위협은 우리와 너무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지난 5월 6일(토), 북텍사스 한인사회가 헤어나올 수 없는 슬픔의 나락에 빠졌다.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이 너무 맑고 아름다워 심장이 아릴 정도다.

고 조규성-강신영 부부와 그의 아들 제임스 조 군의 안타까운 죽음을 설명할 세상의 언어가 있을까. 남은 가족의 슬픔을 위로할 방법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총기의 나라 미국에서 총이 빚어낸 참상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씻기지 않는 고통을 안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총을 싫어한다.

아니다. 사람들은 총을 좋아한다. 무궁무진한 컴퓨터 게임이 있지만 총싸움을 소재로 한 게임만큼 인기있는 것은 없다.

무고한 이들의 영혼을 제물로 삼은 총격난사가 일상화되고 있다. 총기사건의 일상화는 총기 소지의 일상화로부터 시작한다.

스위스에 기반을 둔 소형무기조사(Small Arms Survey)는 미국 일반인들이 약 3억 9,300만개의 개인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미국인 100명당 120정의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알렌몰 총기난사범이 장착했던 탄창 조끼와 흡사한 제품은 아마존에서 40달러도 하지 않는다.

총구의 끝이 어디를 향할 지 모르는 공포가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는 총기사건에 오열하면서도 무뎌지는 공포보다 총기규제에 희망을 걸 수 없다는 좌절이 더 버겁다. 이유없이 스러져간 영혼들의 억울함이 여전히 우리 앞에 존재하는 한.

부디 아픔 없는 곳에서 편히 눈 감으시길, 생명을 다시 얻은 어린 자녀의 앞날에 축복만 가득 하길. 고 조규성 씨 가족과 알렌 몰에서 희생된 모든 영혼이 평안한 영면에 드시길.

쥐어짜면 피가 뚝뚝 떨어진다는 역사책의 현재 진행형 속에서 북텍사스 한인들의 가슴에 피눈물이 흐른다.

 

최윤주 발행인 choi@koreatimest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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