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원내대표인 윤소하 의원실로 협박성 소포를 보낸 범인이 26일 만에 붙잡혔다. 윤 의원에게 보낸 협박편지에서 ‘태극기 자결단’이라고 주장했던 범인은 대학생 진보단체 소속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진보단체가 극우단체를 가장해서 같은 진보 진영인 정의당 소속의 윤 의원을 협박한 이유를 캐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윤 의원을 협박한 혐의로 서울대학생진보연합 운영위원장 유모(35)씨를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29일 밝혔다. 경찰은 “유씨를 상대로 범행 동기 및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씨는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윤 의원 사무실에 협박 편지와 커터칼, 죽은 새가 담긴 소포를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붉은 색 손 글씨로 작성된 A4 용지 한 장짜리 협박 편지에는 윤 의원을 “민주당 2중대 앞잡이로 문재인 좌파독재 특등 홍위병”이라고 비난하는 내용과 “너는 우리 사정권에 있다”라고 위협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편지 작성자는 자신을 ‘태극기 자결단’이라고 소개했다. 경찰은 택배 발송지를 확인하고 폐쇄회로(CC)TV 추적을 통해 유씨를 특정한 뒤 이날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유씨를 체포했다.
유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서울대학생진보연합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의 서울지역 조직이다. 대진연은 2017년 3월 대학 운동권 단체들이 연합해 결성했다. 이른바 ‘태극기 자결단’과는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환영 활동을 펼쳤고, 지난달에는 “북한을 잘 알아야 통일을 앞당길 수 있고, 북한을 알기 위해선 김 위원장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구모임’을 만들어 논란을 낳았다. 9일에는 서울에 있는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 계열사 사무실 앞에서 “일본 식민지배 사죄하고 경제보복 중단하라”며 연좌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유씨를 상대로 진보단체 간부가 어떤 이유로 같은 진보진영의 윤 의원에게 협박성 소포를 보냈는지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하지만 유씨는 경찰 수사에 일절 불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일단 유씨가 속한 단체의 성향으로 미뤄 볼 때 같은 진보 진영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태극기부대나 우리공화당을 폄훼하기 위해 극우단체를 가장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태극기 자결단’이 실체가 없는 단체라는 점에서 유씨가 범행을 극우단체의 소행으로 유도하기 위해 처음부터 꾸민 것으로 보고 있다. 소포 상자에 적힌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김모씨’라는 발신인도 가짜로 드러났다.
경찰은 유씨를 체포한 직후 대진연이 먼저 공안 탄압이라고 항의한 점도 주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검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피의자가 진보단체 소속인지 보수단체 소속인지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면서 “대진연이라는 단체에서 피의자의 소속을 공개하면서 실체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씨 체포 소식이 알려지자 대진연은 ‘공안 탄압 조작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강력 반발했다. 대학생진보연합은 이날 오후 영등포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한국당을 척결하기 위해 앞장서는 대학생진보연합이 적폐청산에 함께 나서는 정의당 원내대표를 협박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며 “이번 체포소동은 철저한 조작사건이자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분열시도”라고 주장했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