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2차 경제보복에 “평화경제로 도약”
- 야당 “신쇄국주의” 전문가 “포퓰리즘 위험”
- 코스피 2%·코스닥 7% 급락‘블랙 먼데이’
한국과 일본의 대립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연일 대일(對日)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지난달 초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데 이어 지난 2일 각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문 대통령은 2일 긴급 국무회의를 열어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한다”면서 “일본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역시 맞대응할 수 있는 방안들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승리의 역사를 국민과 함께 또 한 번 만들겠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에 대해 “외교적 노력을 거부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단히 무모한 결정으로,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큰소리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무회의는 이번 정부 들어 처음으로 생중계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이 “다시는 지지 않겠다” “맞대응” 등의 표현을 한 데 대해 정치권에선 “마치 전선에 나선 최고사령관이 장병들을 독려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상시켰다”고 말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 사흘 뒤인 5일 오후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일을 겪으며 평화경제의 절실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일본 경제가 우리 경제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 규모와 내수 시장으로, 남북 간 경제 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결코 우리 경제의 도약을 막을 수 없다”며 “오히려 경제 강국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더 키워주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나라 일본이라는 비판도 일본 정부 스스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일본의 경제 보복을 대일 경제 의존을 탈피하는 계기로 삼는 동시에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무드 조성을 통한 ‘평화경제’ 카드로 일본을 넘어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평화경제’ 메시지를 던진 시점이 마침 한국의 주가가 급락하는 시점이어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상당수 네티즌들은 “한국 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데 실질적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장밋빛 북한 카드만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본의 비정상적 경제 침략으로 시작된 난국은 해결이 매우 어려워 보이고, 오래갈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일본을 이기자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잘못된 경제 정책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기업이 살아야 극일도 가능하다”며 “기업들이 버텨낼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 대책을 내놓지도 못하면서 싸워서 이기자고 말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도 “문 대통령의 신쇄국주의가 대한민국을 다시 구한말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며 “한일 양국 지도자의 통 큰 합의가 필요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 외교 전문가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각각 자국 내의 반일 및 혐한 감정을 의식해 강 대 강으로 대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전문가는 “한일 갈등 현안에 대해 여론과 표를 의식하는 포퓰리즘 정치로 접근한다면 양국의 경제적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면서 “결국 실무 차원에서 분위기를 조성한 뒤 양국 정상이 마주앉아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과 일본의 경제 전쟁 격화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등으로 5일 한국 주식 시장에서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동반 급락해 ‘블랙 먼데이’란 얘기가 나왔다.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56%인 51.15포인트 하락한 1,946.98로 장을 마쳤다. 이날 종가는 2016년 6월 28일 이후 3년 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또 코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7.46%인 45.91포인트 급락한 569.79로 마감했다. 이날 코스닥 시장 낙폭은 2007년 8월 이후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스닥 지수가 급락하면서 이날 오후 2시 9분쯤에는 3년 1개월 만에 프로그램 매매 호가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은 전장보다 달러당 17.3원 뛰어오른 1,215.3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와 함께 미·중의 무역 전쟁 격화 속에 아시아 주요국의 주가와 환율도 요동쳤다.
<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