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지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키는 건 인간의 능력 밖이다. 할 수 있는 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을 것인가의 선택뿐이다.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일어난 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다. 많은 불행은 사건 때문이 아니라 벌어진 일에 대한 잘못된 해석 때문에 생긴다.
한번 엎지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뜻을 지닌 고사성어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에는 제나라의 왕 강태공의 일화가 담겨져 있다.
젊은 시절 강태공에게는 마씨 성을 가진 아내가 있었다. 강태공이 관직도 없이 학문에만 전념하느라 가정을 돌보지 않자 그의 아내는 가을철 들에 떨어진 피를 주워와 끼니를 때웠다.
하루는 마당에 멍석을 펴고 피를 널어놓은 후 다시 들에 다녀오는 사이 갑작스레 소나기가 쏟아부었다. 부랴부랴 집으로 뛰어왔지만 이미 널어놓은 피는 모두 빗물에 휩쓸려 내려간 상태.
화가 날대로 난 마씨 부인은 “당신 같은 사람과 살다가는 굶어죽겠다”며 남편에 대한 원망을 한없이 쏟아놓은 채 집을 나갔다.
훗날 강태공이 주나라 문왕에게 등용되어 공을 세우고 제나라의 왕이 되자 도망갔던 아내가 그의 앞에 나타나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니 저를 거두소서”라며 애원했다.
이 때 강태공은 물 한동이를 길어오게 한 다음 그 물을 땅에 쏟아붓고는 부인에게 ‘물을 다시 담아보라’고 권했다.
물을 담아보려 갖은 애를 썼지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자 태공은 “이미 엎지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라며 부인을 거두지 않았다.
시련과 고난, 좌절과 절망은 시간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이 때 미숙한 사람은 시련이 닥쳐왔을 때 쉽게 좌절하거나 충동적으로 분노하거나 감정조절을 못하거나 남을 탓한다.
반면 성숙한 사람은 시련이라는 자극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지혜롭게 반응한다.
결국 시련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이겨내는가에 따라 이후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미술기법 중 점묘화법이라는 것이 있다. 몇 걸음 떨어져 보면 아름다운 그림이 눈에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전체는 보이지 않고 해석이 불가능한 ‘점’만이 수두룩할 뿐이다.
시련과 맞닥뜨렸을 때 눈 앞에 있는 문제에 집착하여 절망하기 쉽다. 그러나 현재의 단편적 사건 해석을 뛰어 넘어 시련과 실패 앞에서 더 큰 그림을 보면 해석이 불가능했던 ‘점’들이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눈 앞에 펼쳐지게 된다.
살면서 쓰나미처럼 아무 때나 들이닥치는 온갖 사건들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없으나 밀려오는 사건들을 해석하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감사다.
감사는 주어진 조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해석이다. 부족해도 감사를 마음에 담으면 감사의 마음이 솟아날 수 있고, 풍족해도 감사가 없으면 불평이 쌓일 수밖에 없다. 창조적인 해석능력인 감사는 인간이 지닌 가장 뛰어난 능력 중 하나다.
그렇다고 이 능력이 타고 나는 것은 아니다. 지혜를 배우고 익히듯이 감사 또한 배우고 훈련하는 것이다.
미국 최고의 여성앵커 데보라 노빌은 자신의 저서 ‘감사의 힘’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 주어야 할 말로 ‘감사’를 꼽았다. 감사의 힘을 연습해온 사람이라야, 슬픔이나 고통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해 중 ‘감사’를 가장 많이 생각하게 하는 시즌을 앞두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겨울 문턱에 추위를 견뎌낼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것처럼 매일 감사라는 예방주사를 맞아보는 건 어떨까.
시련이라는 병마를 만났을 때 다른 사람보다 빨리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