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하면 실수가 아니라 고의다. 국가행사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모독이다.
대한민국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독립열사와 민주영령에 대한 모욕이다.
우이독경, 마이동풍이 따로 없다.
봄바람을 한자어로 동풍(東風)이라 한다. 당나라 시대 대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태백이 벗에게 보낸 편지에 언급한 ‘마이동풍(馬耳東風)’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한자성어다. 정확히는 ‘유여동풍사마이(有如東風射馬耳)’. 봄 바람이 말 귀에 스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의 기운이 바람을 타고 귓가를 스쳐도 말(馬)이 알아챌 리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시구를 읊은들 말(馬)이 알아들을리 없다는 의미다.
마이동풍과 같은 뜻의 우리말 속담에 ‘소 귀에 경읽기’가 있다.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이다.
◎ 5.18 국가 기념일 행사를 또다시 ‘수치’로 만든 달라스 한인회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고, 반복된 실수를 하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끝내 알아듣지 못하고 외면하는 달라스 한인회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달라스 한인회(회장 유성주)가 또다시 국가 기념일 행사를 달라스 한인 동포들의 수치로 만들었다. 유성주 회장 임기에만 벌써 세번째다.
그저 한 개인의 고집이나 아집이라 해도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하물며 달라스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한인회가 대한민국 역사의 아픈 상처를 기억하는 기념식에서 벌인 일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달라스 한인회의 행태에 수치와 치욕을 느낀다.
43년 전 신군부 세력에 저항한 광주 민주영령들을 기억하는 기념식이 지난 5월 18일(목) 열렸다. 대한민국 정권이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학살, 시민과 계엄군, 국민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가슴 아픈 날을 기억하는 엄숙한 자리다.
그러나 달라스 한인회는 2022년 제103주년 삼일절 기념식, 2023년 제104주년 삼일절 기념식에 이어 이번 기념식 마저 국가 기념행사를 자신들의 잔치로 만들었다.
사회를 맡은 유종철 부회장은 엄중한 국민의례가 끝나자마자, 동네 잔치에 온 손님들을 호명하듯, 참석한 단체장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한 명씩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박수가 터지고 휘파람이 울렸다.
군중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하고, 시위대가 아닌 일반 시민들까지 군홧발과 진압봉으로 패서 죽이고 총으로 쏴서 죽이고 대검으로 찔러 죽인, 그것도 모자라 오랜 세월 광주의 아픔을 ‘빨갱이 짓’으로 매도한 아픈 역사 앞에서,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박수치고 휘파람부는 달라스 기념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이 장면만 뚝 떨어뜨려놓고 보면, 군사정권이 시민들을 학살해놓고 승리를 자축하는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이 뿐 아니다. 기념식 폐회선언을 하기 전 사회자는 참석한 단체장들을 향해 “광고 할 게 있으면 나와서 하라”며 마이크를 내 주었다.
폐회를 선언하지 않았다는 건 기념식이 진행중이라는 의미다. 지역 단체들의 행사나 요청사항은 기념식을 끝낸 후 별도 순서로 진행하는 게 상식이다.
민주영령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핏빛 가득한 오월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는 기념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은 무례의 극치라 해도 모자람이 없다.
◎ 세번째 반복으로 실수 아닌 ‘고의’ 확인…국가행사에 대한 모독
처음 달라스 한인회가 국가 기념일 행사를 ‘제멋대로 행사’로 먹칠한 건 2022년 3월 1일 열린 제103주년 삼일절 기념식이다. 제38대 달라스 한인회(회장 유성주)가 개최한 첫 국가 기념일 행사였다.
이날 기념식 사회를 본 유종철 부회장은 이번과 마찬가지로 국민의례 직후 ‘내외빈’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29명의 이름을 불렀다. 한 사람씩 호명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좌중은 박수를 쳤다.
삼일절 행사가 끝난 후 본지는 ‘달라스 3.1절 기념식 유감‘이라는 제하의 칼럼을 게재했다. 해당 칼럼은 현재 1만 3,000명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칼럼이 나간 후 카톡 구독자 32명이 뜻을 같이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달라스 한인회의 무책임한 행태는 1년이 지난 2023년 삼일절 기념식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기사참조 ‘달라스 3.1절 기념식, 또 ‘유감’)
2년 연속 쓴 칼럼은 같은 문장으로 끝이 난다.
잘못은 바로 잡아야 하고, 실수라면 더 이상 반복해선 안된다. 발전은 잘못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
그러나 달라스 한인회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쯤하면 실수가 아니라 고의다. 국가행사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모독이다. 대한민국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독립열사와 민주영령에 대한 모욕이다.
문제는 욕됨을 욕됨으로 여기지 못하는 달라스 한인회의 태도에 있다. 말하는 사람들은 입이 아프도록 충고하고 질책하는데, 듣는 자들의 귀는 닫혀 있다.
가히 ‘소 귀에 경읽기’요, ‘말 귀에 스치는 봄바람’이다.
◎ 소 귀에 경읽기…달라스 한인들은 ‘소’가 아니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실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벌어진 1980년 5월 20일. 전남매일신문 신문기자들이 쓴 글이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뼈마디까지 기자들의 울분이 전해진다.
그러나 송곳같이 삐져 나오는 치기어린 반항. 부끄러운 일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잊혀지면 안되는 것을 잊지 않으려면 끝까지 붓을 놓으면 안된다.
달라스 한인회가 스스로를 ‘소’ ‘말’로 여긴다면, 충고도 아까우니 이 쯤에서 그만둘 수 있다. 그러나 한인회는 달라스 한인들의 대표기구다. 여기서 그만 두면 달라스 한인들이 ‘소’나 ‘말’이 된다.
달라스 이민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끝까지 한다. 고쳐질 때까지 붓을 놓지 않을 것이다.
제38대 달라스 한인회는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대한민국 국가 기념식을 더 이상 훼손하지 말라. 소 귀, 말 귀가 아닌 이상.
소 귀, 말 귀를 인정한다면, 달라스 한인회 직책을 내려놓으라. 달라스 한인들을 대표할 자격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