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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 속에는
‘엄지’라는 불리우는 존재가 등장한다.
존재 ‘엄지’는 순식간에 ‘찍어 누르기’로
개미의 목숨을 앗아가는 절대파워의 소유자다.
개미 한 마리의 존재가치는 한없이 미력하고 나약하다.
그러나 그것은 ‘1’일 때의 얘기다.
인간 손가락 하나의 힘에도 미치지 못하는 ‘1’이었지만
‘집단’일 경우 상황은 극적인 반전을 이룬다.
집단을 이룬 개미는
자기보다 몇 십배가 넘는 크기의 먹이를
옮기고 분해하고 해체한다.
정부 여당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에 반대하는
교사와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획일화된 역사관을 강요하는 국가지침에
두 눈을 부릅뜨는 작은 움직임들의 모습에서
나약한 개미들이 이뤄낸 ‘집단’의 강인함을 본다.
집단 속의 개미들은 그들 각자가 주도권을 지닌다.
모두가 자신의 정치 의사를 ‘작정한 듯’ 표출한다.
가만히 있을 공권력이 아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에서
영국의 전 노동당 의원 토니 벤은
국민을 통제하는 첫번째 방법은 ‘겁주기’이고,
두번째 방법은 ‘기죽이기’라고 말한 바 있다.
일명 ‘겁주고 주눅들게 하기’다.
국가 안보를 목숨처럼 여기는 한국의 국가기관은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국정화의 근거로 제시한다.
익숙한 안보논리로 엄지의 파워를 과시한다.
전형적인 ‘겁주기’다.
또한 편향된 역사관 교육으로 인한 혼란을 잠재우고
중립적 시각의 교육을 견인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일제의 한국침략을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왜곡하고
독립운동사를 왜곡 폄하하는 역사반란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식 철통 통치를 비롯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기술하는 교과서를
정권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의도다.
기가 막힌 ‘길들이기’다.
한국사 국정교과서 추진은
군사 쿠데타 못지않은 역사 쿠데타다.
국가 권력의 쿠데타는
소설 ‘개미’에 나오는
절대파워 ‘엄지’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거대한 그림자와 함께 나타나
개미를 찍어 누르는 ‘엄지’가 등장하면
개미들은 뿔뿔이 흩어지며 제 집으로 숨어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개미는 이미 ‘1’이 아니다.
‘엄지’의 출연이 가시화되자 ‘개미집단’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들이 시국선언의 포문을 연 뒤
각 대학의 교수들의 기자회견과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일선학교의 역사 교사 2,255명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선언문을 발표했고
지난 17일(목)에는 교사 1만 5,700여명이 가세했다.
군사독재시절 뜨겁게 일어난 시국선언을 보는 듯 하다.
더 이상 ‘엄지’의 존재에 주눅이 드는 힘없는 ‘개미’가 아니다.
혼자 떨어져 있을 땐 작은 ‘개미’에 불과했던 사람들이
국정교과서 반대를 외치며 집단을 이루었다.
‘집단’의 위력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현재 정부가 역사 교과서 서술을 독점하는 나라는
북한과 베트남, 방글라데시 정도다.
선진국이라 부르는 OECD 회원국 중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나라는 없다.
시대는 변화하고 사회는 진화한다.
엄지의 특기인 ‘찍어 누르기’가 통하는 세상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이 사실을 한국의 청와대는 아직까지도 모르나 보다.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찍어 누르기’는
흔한 말로 ‘삽질’과 별반 다를 바 없는데
그걸 계속하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코리아타임즈미디어] 최윤주 편집국장
choi@koreatimest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