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소식이 전해지자 달라스 한인회 사무실에 빈소가 차려졌다.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 만 14세였던 1940년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돼 중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 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로 고초를 겪었다.
달라스 한인문화센터가 국화향으로 가득 찼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빈소를 찾은 한인들이 고 김복동(93) 할머니의 영전 앞에서 피어낸 향내는 노란 나비에 적힌 염원을 안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노란 나비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든 차별과 억압, 폭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상징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사회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인 지난 30일(수) 달라스 한인회 사무실에 고인의 넋을 기리는 빈소가 차려졌다.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회장 유석찬)가 주축이 돼 마련한 빈소에는 30일(수)부터 오전부터 한인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 유석찬 회장과 달라스 한인회 박명희 회장, 주 달라스 출장소 권민 영사로 시작한 조문은, 오용운 전직 한인회장단 협의회장을 비롯한 7명의 전직 한인회장과 민주평통 달라스 협의회 자문위원 및 한인회 임원진으로 이어지며 슬픔의 물결을 이뤘다.
조문기간동안 빈소로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상주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달라스 협의회 유석찬 회장이 맡았다. 빈소는 1일(금) 오후 12시까지 운영된다.
빈소 한 쪽에는 고 김복동 할머니가 했던 “우리가 함께 하면 못 이룰 게 없습니다”는 글귀가 새겨진 추모벽이 마련됐다. “전쟁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소서” “못다 이룬 꿈, 반드시 우리가 이루겠습니다” “Never forget, Never again” “할머니의 귀한 일, 늘 생각하겠습니다” 등 조문객들의 마음을 담은 추모글은 나비 모양의 스티커에 담겨 날아올랐다.
28일(한국시각) 오후 10시 31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는 최초로 유엔인권위원회에 파견돼 성노예 사실을 증언하였고, 2012년에는 전쟁 중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을 위한 기부 모금인 ‘나비기금’을 발족하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가 담긴 현안마다 쏟아낸 김 할머니의 호소와 호통 속에는 반드시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날 추도사를 통해 김복동 할머니의 생애와 업적을 설명한 민주평통 달라스 협의회 유석찬 회장은 “할머니께서는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제대로 된 배상를 요구해온 인권운동가이자 평화활동가였다”고 강조했다.
유석찬 회장은 “할머니께서 남기신 역사 바로 세우기 정신과 인권정신, 평화정신을 유업으로 이어받아, 전쟁없는 대한민국, 남과 북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통일 한반도를 만드는 일에 더욱 매진하겠다”며 평화의 나비가 되어 하늘로 떠난 할머니의 넋을 위로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운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김 할머니의 사망으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는 23명(전체 피해자 238명)이 남게 됐다. 남은 피해자의 연령이 고령인만큼 끝내지 못한 역사 속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이 시급한 상태다.
최윤주 기자 choi@koreatimest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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