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온한 일상을 마무리하는 국민을 향해 ‘비상계엄’이라는 총부리를 겨눴다.
‘비상계엄’이라는 네 글자에 핏빛 절규를 토해내는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계엄군이 장악한 나라에서 국민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다. 계엄군이 때리면 맞고, 잡아가면 잡히고, 죽이면 죽임을 당하는 게 ‘계엄’이다.
시위에 나간 어린 자식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어도 부모는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법도, 공정도, 상식도, 정의도 계엄상황에서는 사치로운 단어일 뿐이다. 그게 계엄이다.
다행히 국회의 빠른 대처로 비상계엄이 해제돼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계엄 선포의 의도와 행동강령이 적힌 ‘포고령’은 곱씹을수록 섬뜩하다.
-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 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 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처단. 무슨 뜻인지 모르는 이 없는 단어다. 사전적 의미로는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한다’는 뜻이다.
‘처분’은 처리해서 치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핵심단어인 ‘처치’는 무슨 뜻으로 쓰일까.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누군가를 없애다(죽이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상처 등을 치료한다’는 의미다.
영어사전은 ‘처치’를 ‘dispose’로 번역한다. 처리하여 없애거나 죽인다는 의미다. 사전은 To remove something, or kill someone이라 풀이한다.
2024년 12월 3일 23시, 대한민국에 내려진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에 ‘처단한다’는 단어가 두 번이나 선명히 박혀있다.
문제는 대상이다. 참으로 뜬금없다. 그래서 섬뜩하다.
첫번째로 적힌 처단의 대상은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와 ‘의료인’이다. 계엄 포고령은 전공의와 의료인이 48시간 안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지 않으면 계엄군에 의해 ‘처단한다’고 명시한다.
포고령이 겨냥하는 또 다른 대상은 ‘국회’와 ‘국민’이다.
포고령은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을 금한다”로 시작한다. 심지어 ‘집회’는 “4.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는 조항에도 등장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집회의 주체는 당연히 ‘국민’이다.
금지항목을 어겼을 경우의 처벌이 ‘처단’이다. 포고령에 명시된 정확한 표현은 이렇다.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에 의하여 처단한다.”
식민지배와 독립운동, 전쟁과 분단, 군사독재와 민주화운동으로 점철된 지난 세기의 한국 현대사는 참혹한 피비린내와 뜨거운 민족애가 뒤엉키고 부딪친다. 가장 놀라운 점은 가혹한 역사의 끝에 언제나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남겨져 있다는 점이다.
한국 역사 구석구석에 또아리 튼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 되어 우리 사회 악취의 근원이 되고 있다.
윤석열을 비롯해 12.3 비상계엄 사태의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이 피로 세운 민주주의를 짓밟고, 개인의 권력유지를 위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자신의 안녕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며, 대한민국 헌법기관을 군홧발로 짓밟은 12.3 계엄 선포는 명백한 내란이며 군사 반란이다.
국민을 처단하겠다는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일 수 없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반드시 돌아온다. 악취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법의 처단이 시급한 이유다.
최윤주 발행인 choi@koreatimest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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