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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주 칼럼] 지중해의 비극

by admin
한 장의 사진이 지구촌을 울리고 있다.

 

지난 2일, 싸늘히 식은 몸으로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 떠밀려 온 인형같이 작은 몸.

 

무심한 파도가 연신 얼굴을 적셔도 해변에 엎드려 누운 아이는 꼼짝하지 않았다.

 

 

올해 겨우 3살이었던 에이란 쿠르디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족 민병대간의 처절한 전투가 연일 이어지는 시리아 북부 코바니에 살았다.

 

태어나 겪은 거라곤 죽음의 공포가 다 였을지도 모르는 아이와 그의 가족에게,

 

유럽으로 가는 난민선은 ‘희망’이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이라고 여겼던 배는 그들의 목숨마저 앗아갔다.

 

죽음을 피해 떠난 탈출은 또다른 죽음의 여정이었을 뿐이었다.

 

 

더 비극적인 건, 이러한 비극이 새삼스럽지 않다는 사실이다.

 

올 들어 지중해에서 숨진 난민만 2,600여명이다.

 

지난 해에도 3,300여명이 죽었다.

 

 

지중해가 ‘죽음의 바다’로 돌변하고,

 

에게해 역시 ‘난민의 바다’가 됐다.

 

유엔난민기구와 유럽연합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35만명의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넘어왔다.

 

터키에서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로 들어온 난민도 20만명을 헤아린다.

 

 

숨막히게 아름다운 지중해와 에게해가 ‘비극의 바다’로 돌변한 것은

 

이슬람국가(IS)의 근거지인 시리아와 리비아에서

 

탈출행렬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아와 빈곤이 목숨을 위협하는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 같은 아프리카 국가의 난민들도 가세해

 

유럽은 지금 ‘난민’이라는 이름의 인구 대이동이 펼쳐지고 있다.

 

 

죽음의 위협은 바다에만 있지 않다.

 

흑암의 바다에서 살아남은 이들 중 일부는

 

유럽국가로 들어가기 위해 올라타는 열차에서

 

떨어져 죽거나 치여서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럽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중해에서,

 

유로열차에서 사망하는 난민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전쟁과 분쟁, 빈곤과 가난의 위협으로 도망쳐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을 비난할 순 없다.

 

그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다행히 세살배기 쿠르디의 비극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유럽의 문이 열렸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헝가리에서 들어오는 난민을 제한없이 받아들이기로 했고,

 

영국 또한 제한적인 난민 수용을 허가했다.

 

 

가장 적극적인 건 독일이다.

 

연초 30만명의 난민 이주를 예상했지만

 

이번 조치로 80만명을 넘는 난민들이 독일에 정착할 것으로 추산된다.

 

2014년 한 해동안 유럽연합 전체가 수용한 난민보다 많은 숫자다.

 

 

하지만 여전히 유럽국가 대부분은

 

국경에 철조망을 치면서까지

 

난민 유입에 적대적이거나 인도주의적 보살핌마저 거부하고 있다.

 

 

국경을 넘는 난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쿠르디 효과가 사라진다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난민들에게 국경을 여는 국가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7월 한달간 유럽 국경에 도달한 난민들만 10만명이 넘는다.

 

8월 한 주에만 2만 1,000명의 난민이 그리스에 도착했다.

 

3달 연속 기록갱신 중이다.

 

 

난민수용을 앞에 두고 난처해진 유럽도,

 

죽음도 불사하는 각오로 삶의 터전을 떠나온 난민들도,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의 무게 앞에서 처절한 비명소리를 내고 있다.

 

21세기 인구 대이동, 그 곳엔 핏자국이 가득 하다.
[코리아타임즈미디어] 최윤주 편집국장
choi@koreatimest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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