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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인류의 혁신을 이끌었다.
한 때 그를 가리켜 외계인이라는 우스개소리도 있었다.
지구행성에 온 외계인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별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선보인다는 농담이 진담처럼 덧붙여졌다.
“우리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다.
복사기 전문업체인 제록스 알토의 그래픽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애플의 매킨토시를 만들었다고 인정할 때 한 말이다.
혁신의 천재 잡스도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미 세상에 있는 다른 제품을 제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잡스의 모방은 유사한 형태로 베끼는데 그치지 않는다.
애플의 모방에는 ‘창조’라는 단어가 붙는다.
단순히 베끼는 게 아니라
독특하고 창조적인 기능을 추가해
한 단계 진화한 ‘창조적 모방’ 제품을 만들어낸다.
비단 애플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성공기업에 이름을 올린 많은 기업들이 모방으로부터 출발했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을 만든 화이트 캐슬을 모방한 맥도날드는
고객에게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드라이브 뜨루(Drive-through)를 더하여 성공을 이뤄냈고,
뉴욕시의 14개 레스토랑 회원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다이너스 클럽의 신용카드는
자신들을 모방한 마스터카드와 비자 카드에게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한 사례다.
그러나 문화예술분야의 모방은
산업 세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결과가 중요한 경제시장에서 ‘창조적 모방’은 혁신을 가져올 수 있으나,
문화예술 분야에서 ‘창조적 표절’은 지적 도둑질에 불과하다.
최근 신경숙 씨의 표절이 세간의 화두다.
문학계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을 반증하듯
역대급 표절 의혹에 한국 문학계가 흔들리고 있다.
처음 제기된 단편 ‘전설’을 비롯해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작별인사’ 등
그가 쓴 작품 전반에 표절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전세계에서 200만권 이상이 팔린
‘엄마를 부탁해’도 표절 시비 대상이다.
단편 ‘전설’이 일본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내용 일부를
베꼈다는 문제제기가 나왔을 때 발뺌으로 일관하던 신경숙 씨는
논란이 일어난 지 1주일만에 잘못을 인정했다.
단편 ‘전설’을 자신의 작품목록에서 빼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신경숙 씨의 논란이 아니더라도
표절은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음악, 문학, 영화, 드라마는 물론이거니와
학계의 논문과 연구과제에서도
표절은 이미 흔하디 흔한 일이 됐다.
문장을 매개로 한 창작은
독서와 참고서적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특히 한글자 한단어에 목숨을 거는 문학세계에서
의도적인 표절과 의도하지 않은 유사함을 가려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표절과 창작의 ‘경계’를 가리는 게 아니다.
표절에 둔감한 ‘인식’이 문제다.
이번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표절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높다.
그러나 관심만큼 책임이 비례하여 높아진 건 아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류작가의 표절 사건은
‘지적 도둑질’에 둔감한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도덕적 해이’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표출한다.
변방의 글쟁이로서 지금의 이 사태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코리아타임즈미디어] 최윤주 편집국장 choi@koreatimestx.com